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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관(旅, 觀)/낯선 베개

제주, 이 좋은 순간

by 붉은동백 2016. 11. 15.

흔치 않은 풍경과 그 수고로움에 대하여

제주도에는 아름다운 풍경과 어울리는 숙소들이 있다.

제주를 동경하여 육지의 삶을 정리하고 내려온 이들이

낯선 곳, 특히 섬에 정착하고자 집을 세워 가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마치 단편 소설 한 편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이 좋은 순간" 역시 그렇다.

숙소를 예약하기 전부터 "이 좋은 순간"의 건축 과정을 기록한 글을 보면서 고민과 정성을 엿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 좋은 순간"의 모습을 예쁜 사진으로 담은 포스팅들이 많은 관계로

나는 그 후기들에서 보지 못한 것들을 중심으로 -주변잡기적인(?)- 간단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다른 후기들을 보면서 궁금했던 게 있었다.

주방과 테이블의 공간이 1층 침실 공간과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 하는 점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진들이 각각 주방과 테이블, 침실과 화장실의 공간을 분리하여 찍어놓고 있었다.

1층 전체적인 공간의 배치가 내 머리 속에 쉽게 그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궁금했던 점을 보여줄 수 있는 각도.

이성 친구들과의 동행에서는 다소 불편할 수 있다.

1층 남자 둘 / 2층 여자 둘의 배치든, 1층 커플 1 / 2층 커플 2의 배치든 애매한 부분이 있다.

1층 공간이 너무 트여있다. 창문으로 보이는 건 귤밭 뿐이라지만 커튼이 없다보니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화장실은 다소 좁은 편이다.

1층 건물의 반쯤이 귤 농사를 지으시는 주인분의 창고 겸 작업실로 설계되다보니 그리된 것이리라.

 

결국 이 곳에 머물기 적당한 구성은 미취학 아동을 동반한 가족이나 동성의 친구들, 혹은 단독 커플 정도가 될 것 같다.

어르신을 모신 가족들이나 더블 커플 여행자에게는 불편할 것으로 예상한다. 

 

기본적으로 준비되어 있는 식료품들이 이 정도.

메인 식재료만 준비하시면 된다. 많이 가 본 것은 아니지만, 가 봤던 어느 펜션보다도 풍족하게 준비되어 있다.

아마도 앞으로 어느 펜션을 가든 이 정도의 준비를 보게 될 경우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올리브유와 식용유를 따로 구비해 놓으신 것을 통해 주인분의 센스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아 참! 냉장고 위에 파리바게트 식빵과 크림빵도 있다. 

(달걀 10개가 13개로 늘어나는 기적을 행하고 제주도를 나온 것은 비밀이다.)

스피커에 연결된 아이폰은 "이 좋은 순간" 소유.

수 많은 곡들이 저장되어 있고, 실시간 음악 어플도 로그인된 상태로 유지 되고 있어 생활 배경 음악으로 좋았다.

아이폰 아래 있는 신기한 물건은 두피 마사지 기기.

신기해서 한 번씩 사용해봤으나 시원한 듯 부족한 듯 했고, 결론은 개인적으로 구입은 안 하는 걸로.

2층 화장실과 파우더룸. 거울 맞은편에는 붙박이 옷장이 있다.

2층은 반트, 1층에는 암웨이 글리스터 치약이 구비되어 있다.

최근 치약 관련 이슈에서 반트 치약도 명단에 올랐는데 다행히 해당 날짜를 벗어난 제품이라고 한다.

 

2층 화장실은 1층과 달리 비데와 센서 방식의 휴지통 cd player가 구비되어 있다.

화장실은 2층 슬라이딩 방문과 계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반투명 창문 덕분에(?) 사용 중임을 확인 할 수 있어서인지 잠금장치는 찾지 못했다.

1층이든 2층이든 화장실을 이용한다면, 각 층의 음악은 반드시 틀 것을 권한다.

 

좋은 성분으로 만든다는 입욕제.

꼭 해보라고 권해주셨는데 일정상의 문제와 2층 공간의 사용의 애매함 때문에 사용하지 못해 아쉽다. 

 

펜션 주변의 귤들은 12월부터 수확하신다고 한다.

먹어보라고 한 바구니 따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트램폴린은 어른이 되어서도 즐거웠지만,  너무 오래 놀기에는 왠지 서로 민망했다.

펜션 주변 정보를 정리한 족보를 카톡으로 보내주셨고, 중간 정리를 하신다고 외출 시간을 알려드렸더니

침구를 제외하고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3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하셨는데 과연 그 노력이 선명하게 보였다.

숙소를 나오는 날에는 직접 담그신 청귤청에 탄산을 넣어 만드신 시원한 음료팩을 선물해주셨다.

 

 

"이 좋은 순간"은 감귤밭을 배경으로 제주에서 또 하나의 색다른 공간을 만들어 냈다.

펜션 내부는 마치 사진 스튜디오처럼 깔끔해서 자연스러운 포즈만 잘 포착해낸다면 화보집의 배경으로

사용해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내게 그런 능력이 따윈...

상업적인 촬영의 무대로 종종 활용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귤밭과 잘 어울리는 "이 좋은 순간"에는 환한 빛만큼이나 주인분의 정성이 가득했던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