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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관(旅, 觀)/제주

청수 곶자왈, 반딧불이

by 붉은동백 2016. 7. 4.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시간을 꼽으라고 했을 때 절대 빼놓지 못할 순간이다.

 

아주 어렸을 때는 반딧불이를 손으로 잡아도 보고 했었다.

 

그래서 반딧불이를 보러 간다고 했을 때 그 기억이 떠올랐다.

 

TV나 애니메이션에서 가끔씩 보곤 했으니, 예전의 그 기억과 맞물려 여전히 선명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청수 곶자왈로 향했다. 

 

네비게이션에서 청수곶자왈을 찍고 찾아가는데, 오가는 차 한 대 없고 가로등 불빛도,

 

마을 불빛도 보이지 않는 도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거 아닌가 걱정하며 가던 커브길에서 마침내 붉은 경광등을 흔들며 주차 안내를 해주시는 분을 발견하게 되었다.

 

주차장에서는 십여대의 차가 벌써 주차되어 있었다.

 

 

청수 곶자왈은 마을 주민들께서 직접 안내하시고 통제하고 계신다.

 

반딧불이를 보러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입구에서 주민 한 분의 인솔 하에

 

시간 간격을 두고 한 팀씩 곶자왈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입구에서 간단한 주의사항을 전해 들었다.

 

핸드폰, 카메라 등의 불빛은 절대 내지 말 것, 소리를 내지 말 것, 길가에 소똥이나 말똥을 잘 피해갈 것 등이 있다.

 

사실 방문 전 입고 가는 옷도 어두운 색 계열의 긴팔과 긴 바지, 운동화를 신을 것을 권하고 있다.

 

반딧불이가 밝은 색의 옷과 몸에서 나는 체취 등에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윽고 우리 일행이 속한 팀이 입장하였다

 

얼마간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걷다가 오른쪽으로 빠지는 흙길로 들어섰다.

 

사방이 고요했다. 우리 일행이 속한 팀은 어린 아이들도 있었음에도 끝까지 조용히 있었다. 기특한 꼬맹이들.

 

가뜩이나 어두운 숲에서 나무가 하늘을 완전히 가리고 있는 구간을 들어서니 딛고 서 있는 곳조차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을 가만 가만 걸어서 들어갔다. 

 

 

그 순간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인공의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어둠과 발걸음 소리마저 죽이며 조심스레 걸었던 길.

 

그러나 달랐다.

 

청수 곶자왈에서는 긴장감이 없었다.

 

주변 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둠 속을 살피는 눈은 같았지만 마음이 참 편안했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그렇게 묘하게 같으면서 다른 길을 들어가고 나오는 동안 오직 대 여섯마리의 반딧불을 볼 수 있었다.

 

사실 곶자왈을 방문할 당시 오전에는 비와 안개가 많아서 반딧불이를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그 어둠 속에서 순간순간 불을 밝히는 반딧불이의 작은 불빛이 정말 환하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반딧불이에, 혹은 그 어둠과 고요 속의 산책에 매혹되어 무척 맑았던 다음 날 다시 곶자왈을 찾았다.

 

방문객은 전 날에 비해 서너배는 많았고 주민분들도 전날에 비해 더 많이 나오셔서 안내해주셨다.

 

그리고  이 날은 더 깊이 들어갔고 더 오래 숲 끝에 머물렀다.

 

그렇다고 수백마리의 반딧불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비록 맑은 날이었지만 시기적으로 이곳에 서식하는 반딧불이는 6월 중순경 이미 가장 많은 개체수를 보였으며 지금은

 

줄어들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9월 무렵이면 더 밝은 빛을 내는 다른 종의 반딧불이가 나온다고 하니 시기가 맞는 분은 참고하시면 좋겠다.

 

 

 

 

 

 

청수 곶자왈의 주차 통제부터 인솔하시는 분까지 한 분 한 분 무척 친절하시다.

 

따로 입장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서 지원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하셨다.

 

마을 분들이 마을 찾는 관광객들 위한 봉사차원에서 하시는 거란다.

 

비 오는 날에도 혹시나 찾아오는 분들이 계실까 싶어 나와 계신다고 한다.

 

제주도의 또 하나의 훌륭한 자원인 만큼 꾸준한 관리를 위해

 

제주시나 관련 기관에서 마을 주민 분들 위한 지원이 지속적으로 있었으면 좋겠다. 

 

 

 

 

덧)

저녁 8시 무렵부터 뒷정리가 끝날 9시가 훨씬 넘은 시간까지

 

생업을 마치고 쉴 시간을 할애해가며 밝은 모습으로 맞아주신 청수 곶자왈 주민들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안내에 따라 조용히 반딧불이를 함께 관찰하셨던 성산 거주 도민분들과 관광객분들께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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