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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김영한 그리고 길상사

by 붉은동백 2016. 8. 18.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셔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셔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사슴』, 1936; 『백석전집』, 실천문학사, 1997)

 

 

 

 

시 읽기

 

"오늘부터 당신은 내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에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함흥에서 백석과 김영한은 만나게 된다. 한 명은 영어교사였고 한 명은 기생이었다.

자야(子夜)라는 호를 붙여주며 3년을 동거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지게 되었다.

백석은 자야에게 함께 만주로 도망가자고 했지만 자야는 백석을 걱정했고 거절했다. 

해방이 되었지만 남북으로 갈라졌다.

남한에 내려와 있던 김영한은 요정을 열어 큰 돈을 벌었다. 우리나라 3대 요정으로 꼽혔던 대원각이었다.

그녀는 살아생전 백석의 생일이 되면 하루 종일 식사를 거르며 그를 기다렸다고 한다.

1997년 창작과 비평사에 2억원을 출연하여 백석문학상을 제정하기도 한 그녀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 7천여 평의 대원각터와 40여개의 부속 건물을 시주하였다.

지금의 길상사가 바로 그곳이며, 그녀의 법명 "길상화"에서 따왔다.

그 많은 재산이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에

 

"천 억이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해"

 

라고 말했던 그녀.

"나를 화장해 첫 눈 오는 날 경내 뿌려 달라"는 유언대로 99년 11월 13일 임종 후

화장한 유골은 경내에 보관하다가 그 해 첫 눈이 오는 날 길상헌 주변에 뿌려졌다.

 

 

내리는 눈 따라 백석은 흰당나귀 타고 마중 나왔을까

서로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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